위안부 실상, 26년 전 세상에 폭로
고 김학순 할머니 증언14일은 ‘위안부 기림일’ 미 전역 기림비 설립 계기…팰팍에 최초로 세워 생존자들 “아직 우리에게 광복은 오지 않았다” 해마다 8월 14일이 돌아온다. 하지만 어떤 날인지 그 의미를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광복 46주년을 하루 앞뒀던 1991년 8월 14일. 26년 전 이날 한 여성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인해 수십 년간 드러나지 않았던 위안부 피해 실상이 세상에 최초로 폭로됐다. 고 김학순 할머니는 이날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였음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질렀던 여성 인권 유린의 만행을 고발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은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이 있었기에 공론화될 수 있었다. 증언 당시 67세였던 김 할머니는 10대 때 겪었던 위안부 참상을 말했다. 그는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며 “언젠가는 밝혀질 역사적 사실이기에 털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고백은 1990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는 민간 업체의 소행이었지 일본군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자 이에 반박하기 위해 이뤄졌다. 그는 “당한 것도 너무나 치가 떨리는데 일본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증언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됐던 침묵이 깨졌다. 김 할머니의 증언이 도화선이 돼 다른 피해자들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외교 문제를 넘어 대표적인 여성인권 의제로 부상했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는 대부분 20대 미만으로 전쟁범죄일 뿐 아니라 아동 인신매매이자 성범죄라는 점에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인권유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김 할머니의 용기는 미국에서도 꽃 피우고 있다. 최초 증언 후 16년이 지난 2007년 7월 30일 연방하원에서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를 계기로 미 전역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2010년 10월 23일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공립도서관 앞에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설치됐다. 위안부 기림비로는 전 세계 최초로 세워진 것이다. 이후 뉴욕주 나소카운티(2012년)와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법원 앞(2013년)·유니온시티(2014년)·클립사이드파크(2017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청사(2014년), 캘리포니아주 가든그로브(2012년) 등에 기림비가 세워졌다. 또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2013년), 미시간주 사우스필드 한인문화회관(2014년), 조지아주 애틀란타(2017년) 등 3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위안부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6년 전 김 할머니의 고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 이 같은 기림 활동은 위안부 이슈가 일부 국가간 외교 문제가 아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음을 인정 받았다는 방증이다. 지난 2015년 한·일 양국 정부간 이뤄진 위안부 문제 합의가 많은 이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은 위안부 이슈의 본질인 인권 보호의 메세지를 제대로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매년 8월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하지만 기림일은 한국 국가기념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기림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이 논의됐지만 무산됐기 때문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1997년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0년째다.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37명에 불과하다. 2014년 유니온시티 기림비 제막식에 참석한 이옥선 할머니는 “아직 우리에게 광복은 오지 않았다”고 외쳤다. 서한서 기자 seo.hanseo@koreadaily.com